[언론보도] 인천일보_인천도호부관아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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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4-05 17:35
조회 : 2,893
작성자 : 인천도호부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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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밀물] 인천도호부관아의 어제와 오늘
인천도호부관아(미추홀구 매소홀로 589)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호다. 조선시대에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을 이른다. 지금의 인천시청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시대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도 아래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을 두어 지방행정 업무를 관장했다. 인천에 도호부를 설치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강희맹의 '인천부승호기'엔 1424년(세종2년) 이미 객사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인천도호부엔 왕권의 상징인 객사(客舍)를 비롯해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東軒)·내동헌 등 15~16동의 건물이 존재했다고 알려지지만, 현재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돼 있을 뿐이다. 이곳에 자리한 건물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화도진도'를 바탕으로 객사·동헌·공수(公須) 등 7채 건물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현재 청사 내에선 전통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맷돌·다듬이 등 생활용품은 물론 북·징·꽹과리·소고 등 전통악기를 다루며, 외줄타기·굴렁쇠·연날리기·제기차기·팽이와 같은 우리 전통 놀이문화가 즐비하다. 그래서 특히 초중고생들의 체험 학습에 큰 도움을 준다. 인천도호부관아 양 옆으론 인천향교와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이 나란히 자리한다.
인천도호부관아 안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홍살문이 있고, 거기를 통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인천향교(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1호)가 나타난다. 성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지방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려고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오늘날 학생 교육장소인 명륜당에 들어가면, 예의와 효에 대한 수업을 받는다. 수업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인사법·한복입기·우리절·투호·차마시는법·다식만들기 등이 포함된다.
인천이 개항(1883년)하기 이전 '원인천'은 도호부관아가 위치한 문학동(관교동)이다. 이곳 인근 문학산엔 비류 때 쌓아올린 문학산성이 있으니, 관교동 일대는 미추홀부터 중심지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면서 조선왕조 흔적 지우기의 하나로, 대부분의 도호부 객사와 동헌은 교사(敎舍)·면사무소·경찰서 등의 건물로 변경됐다. 그 외형적 모습도 훼손됐다.
이제 인천무형문화재 총연합회에 이어 가천문화재단에서 인천도호부관아 운영을 맡게 됐다. 인천시는 지난해 말 민간위탁 운영자 공모에서 경쟁을 거쳐 가천문화재단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설운영 전문성·책임성·행사운영 능력 등을 두루 심사한 결과다. 가천문화재단은 앞으로 3년간 관아를 담당한다.
향후 도호부관아 일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그러면 인천의 역사성을 체계적으로 확인할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여기에 시민들의 문화재 향유권을 높이려고 힘을 쏟아야 할 터이다.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쪽으로 도호부관아를 운영했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도호부관아(미추홀구 매소홀로 589)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호다. 조선시대에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을 이른다. 지금의 인천시청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시대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도 아래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을 두어 지방행정 업무를 관장했다. 인천에 도호부를 설치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강희맹의 '인천부승호기'엔 1424년(세종2년) 이미 객사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인천도호부엔 왕권의 상징인 객사(客舍)를 비롯해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東軒)·내동헌 등 15~16동의 건물이 존재했다고 알려지지만, 현재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돼 있을 뿐이다. 이곳에 자리한 건물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화도진도'를 바탕으로 객사·동헌·공수(公須) 등 7채 건물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현재 청사 내에선 전통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맷돌·다듬이 등 생활용품은 물론 북·징·꽹과리·소고 등 전통악기를 다루며, 외줄타기·굴렁쇠·연날리기·제기차기·팽이와 같은 우리 전통 놀이문화가 즐비하다. 그래서 특히 초중고생들의 체험 학습에 큰 도움을 준다. 인천도호부관아 양 옆으론 인천향교와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이 나란히 자리한다.
인천도호부관아 안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홍살문이 있고, 거기를 통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인천향교(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1호)가 나타난다. 성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지방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려고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오늘날 학생 교육장소인 명륜당에 들어가면, 예의와 효에 대한 수업을 받는다. 수업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인사법·한복입기·우리절·투호·차마시는법·다식만들기 등이 포함된다.
인천이 개항(1883년)하기 이전 '원인천'은 도호부관아가 위치한 문학동(관교동)이다. 이곳 인근 문학산엔 비류 때 쌓아올린 문학산성이 있으니, 관교동 일대는 미추홀부터 중심지 역할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면서 조선왕조 흔적 지우기의 하나로, 대부분의 도호부 객사와 동헌은 교사(敎舍)·면사무소·경찰서 등의 건물로 변경됐다. 그 외형적 모습도 훼손됐다.
이제 인천무형문화재 총연합회에 이어 가천문화재단에서 인천도호부관아 운영을 맡게 됐다. 인천시는 지난해 말 민간위탁 운영자 공모에서 경쟁을 거쳐 가천문화재단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설운영 전문성·책임성·행사운영 능력 등을 두루 심사한 결과다. 가천문화재단은 앞으로 3년간 관아를 담당한다.
향후 도호부관아 일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그러면 인천의 역사성을 체계적으로 확인할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여기에 시민들의 문화재 향유권을 높이려고 힘을 쏟아야 할 터이다.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쪽으로 도호부관아를 운영했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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